한마음 칼럼 : “똑바로 살아, 목사놈아?!”
몇 달 전, 이발을 하러 잠시 이발소에 들렀더니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계셨다. 우리 마을 해변 숲에 들어오는 ‘해양치유센터’에 대해 이야기하시다가 잠시 내 눈치를 보신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대규모 치유센터가 건립되면서 국립공원 규제가 풀리게 되는 것을 주변에서 기회로 삼으려는 이들이 있어서 마을에서 말들이 아주 많다고 하신다. 센터를 우리 마을에 유치하려고 그동안 온 마을이 단합하여 나섰고 정말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하셨다. 그런데 약사 빠르게 숟가락 얹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며 공연히 이런저런 얘기로 번질까 하여 걱정이라는 말씀들이셨다.
10년 쯤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면 내에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 스무 분 댁에 밑반찬을 만들어 갖다 드리고 있었다. 작은 봉사였지만 4년 동안 계속했던 우리로서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원청리에 온 몸이 잔뜩 부은 채 홀로 누워계시는 분이 있었다. 그 날은 병원에 가야 하는데 집 가까이 있는 버스 정류소까지 갈 수도 없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밑반찬 배달을 마치고 다시 가서 아내와 권사님 한 분과 함께 간신히 부축하여 승합차에 태우고는 읍내 병원으로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읍내 가는 길은 좁고 구불구불한 왕복 2차로였다. 양잠리 고개를 넘고 있는데 바로 뒤에 흰색 승용차 한 대가 바짝 따라붙었다. 조금 더 속력을 올려 시속 60Km 정도로 운행했지만, 그 승용차는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건지 계속 재촉했다. 그러다가 반대편에서 차가 오고 있는 데도 무리하게 추월을 하려고 했다.
깜짝 놀라 차창 밖으로 얼른 손을 내밀어 주의 신호를 보내서 몇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피해야 했다. 그러자 그 승용차는 헤드라이트를 번쩍 거리며 더욱 밀어붙였다. 숨을 거칠게 내쉬는 환자 어르신이 불안해서 속도를 더 올릴 수 없었다. 겨우 읍내 입구에서 신호대기로 멈추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오는 화물차가 깜짝 놀라도록 무리하게, 우리를 앞서 비스듬히 차를 세워 막아 놓고는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내가 내 몸뗑이 갖구 운전하는 데, 니가 뭔데 참견이야. 씨~!” 그러니까 남이야 위험한 추월을 하건 말건 왜 말렸냐는 것이었다. “아저씨 혼자 다치는 게 아니라 사고 나면 여럿 다치잖소.” 그러자 우리 차를 한 번 둘러보더니 목청을 더 높였다. “이거, 교회차 아녀? 재수 없게! 씨~!”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그 야단이었다. 우리 뒤를 따라오던 시내버스 기사까지 뭐라고 그러자 그는 자기 차로 돌아서면서 한 마디 내 뱉었다. “똑바로 살아! 목사놈아!?”
그리고는 도망치듯 출발하는 그 차 운전석 앞에 걸린 커다란 십자가 목걸이가 보였다. 아이고. 그래, 정말이지 똑바로 살자. '이 목사'놈아! 예수님이 부끄러움 당하실 일 없이 사는 것만도 엄청난 거다. 더구나 이 좁은 지역사회에서. 신자 노릇 제대로 하기 정말 힘든 세상이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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