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님들의 세상, 소도 있었다 (주의:내용의 묘사가 일부 험할 수 있음) ]
단순히 '왜 개고기만 유독 반대하나' 싶었다. 사실인즉 개고기(써 놓고 보니 벌써 혐오스럽다)는 극빈 농촌 민중의 멸종을 막아준 거의 유일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쌀밥은 커녕 보리밥으로도 배를 불리지 못하는데 아니 고구마 감자도 없어 못먹는데, 허연 쌀알을 한 주먹씩 앞마당에 휙휙 뿌려 키우는 닭이나 달걀은 다 부잣집 사정이었다.
어린시절, 기와집 아저씨네 집에 갔다가 보던 그런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거듭된 흉년으로 산골 마을 민심마저 궁박하고 흉흉해지면 아이들 몸엔 부스럼이 극심했다.
보나마나 영양실조였다. 그때 쯤이면 마을 부잣집 할아버지가 사람 먹을 걸 나눠주며 토실토실하게 살찌운 독구를 내주고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돌아서서 헛기침을 했다.
사에이치클럽 아재들이 우루루 대형자전거 한 대에 타고 양조장에 달려가 막걸리를 한 말 싣고 온다. 그리고는 마을 한 복판 너른 마당에서 한 바탕 기괴한 풍경이 펼쳐진다.
누가 그랬다. 조선시대의 망나니가 뇌물을 받았더라고. 제발 제발 단 칼에 저 눔의 목을 쳐 주시우. 하지만 어쩌랴. 마을에는 그런 단 번의 자비심을 베풀 프로는 없었던 것을.
온 마을 사람이 멀찍이 둘러선 가운데 누운 둑구가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에라잇, 이리 줘봐. 한 아재가 다시 눈을 질끈 감으며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오오 불쌍한 독구. 녀석이 살아있을 때 누구한테나 꼬리치며 반가워했던 걸 모르는 이 없다. 어쩔 수 읎지, 다 그런 겨. 한편에 걸어놓은 가마솥에서는 벌써 물이 펄펄 끓는다.
그 귀하디 귀한 약물을 한 바가지씩 퍼다가 나눠 마시고 나면 마을 아이들 머리통이며 팔뚝이며 등짝이며 발목에서 기승을 부리던 부스럼들이 모두 씻은듯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극빈의 농촌 민중들은 또 한 번, 또 한 번의 멸종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것만 유독 그러는 걸까? 혹시라도 누군가 이런다면 당장에 미개혐오대상이 될터.
벼랑 끝 기아 대멸종 위협의 시대가 아니라면 그러는 게 당연지사. 그런데도 뭔가 한편의 찜찜함은 싹 가시질 않는다. 그러면? 닭이나 돼지나 소는? 아니 논밭의 곡식들은?
아마도 저런 끔찍한 비극이나 요즘 개님들이 되신 거나 다 그들이 이 최강의 잡식 동물인 인간들 가까이에서 그런 그들을 겁 없이 신뢰하며 살도록 진화한 덕일 것이겠다.
자신의 감정까지 일부 소통하고 나누고 또 듬뿍 정이 들 수 있는 대상이니 유달리 그럴 수 밖에 없을 것텐데. 아하, 그러고보니 닭고기는 괜찮은 게 바로 그런 이유인가 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개님들의 세상이 오기 전에는, 소님들도 있었다는 걸 우린 깡그리들 잊고 사는 거다. 농촌 민중들 곁에서 묵묵히 일하며 오래오래 함께 살아 주던.
하지만, 몇 번을 망설인 이 뜬굼없는 게시물에서 사실,
진짜로 험한 어쩌면 무서운 장면은 이제부터이다.
소 장수의 트럭에 억지로 올라탄 뒤 결국
주인이 자신을 팔아넘긴다는 걸 알아차린 소는
그만 체념을 하고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
(되도록이면 여기에서 그만, 나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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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민간인까지 마구 사살하고
시신은 무방비로 버려 방치하는
전쟁 통의 사람, 사람들이랴! 아이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6783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today/article/6353251_357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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