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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전역 후 일곱째 날] 55년 만에 교회당 밖에서 주일을 보내다, 와오 👍

by 농민만세 2023. 11. 6.

가슴 한 가운데에
가시로 얽어 맨 붉은 심장을
안고 손등에 못자국 선명한
예수님은 액자 속에서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웬지 모를 부조화가
조금은 무서웠다


사실 예로부터 9살이면
다 큰 어른으로 대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랬을 법하다
유난히 어른스럽던
'김원구'라는 동무가
교회로 이끌어주었다

우선 전도사님 댁엘 먼저
찾아가 보자고 했고
전도사님은 내 손을 꼬옥 잡고
한참 기도해 주셨던
기억이 선명하다

1969년
경기도 광주대단지 단대리에
선친께서 회생당이라는
한의원을 내셨을 때
한겨울 깊이 잠든 밤
연탄가스를 마신 온 가족이
장례 치를 뻔 했던 때 쯤이다

그날 이후 지금도 화인처럼
뇌리에 박혀있는 예수님 초상화
나중에 고향교회 주일학교에서
성경요절 말씀을 암송하고는
상으로 받던 명함 크기의
그림 카드에서 다시 보고는
어린 마음에도 적잖이 놀랐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나는
무려 55년을 거의 한 주일도
빠짐없이 교회당에서 살아왔다
종교 행사 참여가 금지됐던
최전방 부대 육군 훈련소
주일 오전의 내무반
낯설은 현실감이 기이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교회당 밖에서 와오👍
주일을 보냈다
정말이지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일이었다


우선 교회당 대신
커피콩을 직접 볶는다는
무지 조그마한 찻집을 찾아
에효 혹시나 기대했던
원액 커피 한잔을
에라이 그냥
목구멍에 털어넣고는


인근 지역 소도시
작은 호수공원에서
물멍 때리다 걷다
물멍 때리다 또 걷다
또 물멍 때리며
주일 하루를 보냈다
이 웬 호사인가


인근 공단의 노동조합
조합원 가족들이
꽹과리 치며 걷기대회로
모여 있었고 햇볕 반사되는
호수 물 위로 꼬마 오리들이
물갈퀴 휘져으며 미끄러지고


지구 환경보호 캠페인 사생대회
아이들 그림작품이 걸려있는
수변 둘레에서 꽤 많는
사람들이 저마다
때 이른 낙엽을 밟고 있었다


이렇게 교회당 밖 세상은
아무런 일도 없이 스스로들
다 알아서 살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