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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람과 경외/나의 골방

피해 갈 수 없는 '바울 읽기'~ 그런데?

by 농민만세 2017. 1. 6.

피해 갈 수 없는 '바울 읽기'~ 그런데?

 

우리가 그야말로 '갈릴리 예수의 사람들'인 이상은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바울'

특히나 그도 우리처럼 역사의 예수를 직접 만나서 그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기에!

베드로 등과 같이 그러지 않았음에도 그는 어찌하여 그처럼 절실하게

그 갈릴리 사람 예수를 '온 세상의 그리스도'로, 아니 무엇보다 그 자신이 전적으로

'미쳐서' 남은 전 생애를 그렇게 줄곧 '그의 사람'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인지...

도대체 그가 만난 그 갈릴리 사람은 누구였던 것인지...

 

 

 

 

 

 

2017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매 주일 미루고 미루어 두었던 '그런 바울 읽기'를 시작해 본다.

당연히 그런 그가 매우 당연하게도 집중하였던 '그리스도 공동체' 곧 '교회'도

또한 무엇이었는지... 함께 읽게 될 것이다.

 

다만, 농촌 어르신들이 잘 들으실 수 있게!

결국은 설교 준비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엄청난 공이 매주 필요한

<설화체 이야기 설교>로!? 어이쿠야~

 

1.

 

동시에, 몇 년 전 구입해 두었던 추천도서;

 

 

물론 신학생 때 '바울 신학'으로 어지간히 골머리 싸맸었지만,

언제나 처럼, 일단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설교가 되도록!

<바울의 서신들과 신학 I, II, III>, 박익수 저, 대한기독교서회...

꼼꼼히 좀 읽으며 예전 노트도 찾아보며 가야...

 

이 책은 감신대 신약학 교수인 박익수 목사의 책인데,

"교리를 우선하지 않고, 지나치게 성서 본문에 충실했다(?)"는 기가 막힌 이유로

감리회 교회의 교권자들에 의해 매우 심각한 제재를 받았다는 전설(?)이 있는 책으로

강추! ㅡ,.ㅡa

 

 

2.

 

물론 어쩌면 보다 중요한...

(....그러니까 이제는 좀 나의 전공분야 바깥의 엄밀한 논의들을 경청함으로

보다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야만 하는 숙명적인 속성을 지닌 것이 우리의 복음이고

그처럼 복음을 지속적으로 번역해내는 것이 또한 우리의 숙명이어야 하기에~)

알랭 바디우의 바울을 다시 꺼내다.

 

 

 

더구나 이 책 <사도 바울>의 부제가 "보편주의의 정초"가 아니던가!!!!

그런데~ 과연

그럴만큼 치열한 바울 읽기가 나의 이런 환경에서 가능키나 한 일일까? 아우~! ㅡ,ㅡ

 

///위 책에 대한 참고, <한겨레의 '책과 생각'>

-> 우리의 복음을 이렇게도 잘 번역할 수가! 르네 지라르와 자끄 데리다 등의 번역도 물론이고~!

 

" 진리의 보편성은 개별성과 특수성을 뛰어넘을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모든 차이와 차별을 초월해야 한다. 그러나 그 보편성이 차이의 억압이나 부정이 되어서도 안 된다. 차이가 보편을 부정하지도 않고 차별을 용인하지도 않는 차원을 바디우는 ‘보편적 개별성’이라고 지칭한다.

 

진리를 깨닫는 주체로서 개인의 개별성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그 개인들이 모든 차이를 넘어 보편적 진리의 지평에 나란히 서는 것, 이것이 보편적 개별성이다. 바울의 텍스트는 바로 그 차원을 보여준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71469.html#csidxd7c0dae206277498148707c541bfce8

 

3.

 

그리고 다음이 바로

<갈릴리신학대학원/박사원> 이덕주 교수의 바울!!!이다.

특히 그의 '바울 읽기'는 기존의 바울 읽기와 다른

'갈릴리 예수의 바울' 읽기이기에 더 없이 중요하다!

 

http://player.vimeo.com/video/114072211

-> 지금 열어보니 이대로는 동영상 강의가 열리지 않는다...

당연히 대학원의 강의이기 때문 ㅡ,ㅡ

꼭 필요한 분은 연락 바람, 대학원 온라인 강의실로 안내하겠음.

 

바울의 기독교 1강/이덕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