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 내 안에 아니 살며
- 십자가의 요한 / 번역 : 최민순
사노라 내 안에 아니 살며,
애틋이 바라는 마음,
아니 죽어져 죽겠노라.
이미 내 안에 아니 사는 나,
님 없이는 살지 못하겠노라;
나 없이, 그이 없이 있는 것이라면,
산다는 이것이 무엇이겠느냐:
즈믄의 죽음이나 다름 없나니
실상 내 삶을 바라는 탓이로다,
아니 죽어져 죽겠으면서도.
내가 사는 이 삶이란,
차라리 삶을 앗음이어니,
그대와 같이 살기까진,
그러기 끊임없는 죽음입니다;
님이어, 이 말씀 들으옵소서
이런 삶이 싫사오니,
아니 죽어져 죽겠음을.
그대 없이 있으면서!
내 어이 살 수 있으리까,
죽음 중에도 큰 죽음을
치르는 것이 아니 오리까!
가여울손 이 내 신세
아니 죽어져 죽겠노라.
물을 나온 물고기는
죽는 고생 할지라도!
급기야 죽어지니,
차라리 덜하련만:
애달픈 내 살이에,
어느 죽음을 비길련가,
살수록 더 죽겠음을.
성체 안의 님을 뵈오며
마음을 달래려 하다가도,
실카장 누릴 수 없음에
서글픔만 더해 오니;
모든 것이 쓰거울 뿐,
원대로 님을 못 뵘이로다,
아니 죽어져 죽으리로다.
그대 뵈올 바람으로;
님하, 이 마음 즐거워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곱으로 아리옵니다.
살면서도 무서워 떨고,
바랄대로 또 바라자니
아니 죽어져 죽겠소이다.
저 죽음에서 날 건지시고
님하, 생명을 내게 주소서
억세고 질긴 이 오라에,
묶인 채 나를 두지 마옵소서:
보고지워 못 살겠음을;
너무나 알찬 내 시름이니이다,
아니 죽어져 죽겠사옴을.
이제금 죽음을 울으리다
내 죄 때문에,
이렇듯 잡혀있는,
내 삶을 통곡하리까?
아, 내 하느님이어, 언제이리이까,
다시는 아니 죽고 내가 산다고,
진정 말할 수 있을 그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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