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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두 장의 목사고시 합격증"

by 농자천하/ 2019. 7. 1.

 

두 장의 목사고시 합격증

신학대학을 다니며 거의 사라져가던 한 농촌교회를 다시 세워내느라 나는 동기생들보다 2년 늦은 1992년 봄에야 ‘목사고시’에 임하였고 그해 7월 성적증서와 합격증을 받았다. 당시에는 가을 총회에서 고시 합격자들을 따로 인준하지 않고 고시위원회에서 곧바로 고시 합격 통보를 했었다.

목사 고시를 코앞에 두었을 때는 경북의 한 산골 마을에 있던 교회를 섬기는 전도사였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교회에 장례가 이어졌고 연신 대수술로 입원들을 하시는 바람에, 논문과 설교문을 겨우 작성하여 기일 안에 제출하고는 본 고시 결과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편으로 날아온 목사고시 합격증은 진짜인가 싶을 만큼 낯설었다.

그리고는 한 달 뒤, 목사고시 ‘불합격 통지서’가 새로 작성된 성적증서와 함께 도착했다. 이미 발송한 합격증은 노회에 반납하라는 몇 줄의 통지뿐, 교단 신문도 140명을 추가로 불합격 처리하였다는 단순 내용만 보도하였다. 연유나 알아보자고 고시위원들의 교회로 전화했는데, 도리어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전화를 하냐’는 어이없는 목사도 있었다.

해명은커녕 설명 한 줄도 없는 총회의 행정 수준이 어처구니없었다. 같은 피해자들을 몇 명 찾아냈지만 모두 어이없다면서도 ‘찍히는 게 두렵다’고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재시험에 겨우 합격했던 어떤 전도사는 합격증을 받고 바로 가을노회에서 안수를 받으려고 초청장까지 보내 놓고 어쩔 수 없이 취소해야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직후 다른 노회로 이임하게 되어 합격증을 반납할 수 없었고 덕분에 이듬해 재시험을 치르고 받은 합격증까지 2장의 목사고시 합격증을 갖고 있다. 머지않아 확인할 수 없는 말이 돌았다. ‘재재시험’을 마지막으로 치른 어떤 이들이 일부 고시위원들을 금전으로 매수하려던 일이 드러났고, 그들 몇 명만 불합격 처리시킬 수 없어 그렇게 되었다는 뒷소문이었다. 이후로 목사고시 합격자들을 가을 총회에서 공식 인준한 후에, 공식 발표를 하고 개별 통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국 개신교의 장자 교단이라고 자처하는 총회에 최소한의 목회자 양성 기본 원칙은 있는 것인지. 10대 청소년기부터 일명 ‘성소(聖召)학교’ 운영을 통해 목회자의 기본 소양을 기르고 고양된 인성과 함께 지성인으로서 인문학적 소양을 기본으로 갖추게 하는 등 체계적인 목사 양성 프로그램은 아예 기대할 수가 없다. 해마다 몰려나오는 신대원 졸업생들을 감당해 내기도 이미 벅찬 현실이니.

매년 천여 명씩이나 된다던 전국의 ‘목사고시 재수생’이 최근에는 얼마나 되는지 인터넷 검색을 해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목사고시 응시 자격 얻는 법’ ‘신대원 입학하는 방법’. 이 정도는 양호한 것인데, ‘신학사 온라인 취득 방법’ ‘고졸 목사 되는 법...?’ 아하, 아마 요즘은 목회 면허증도 온라인으로 딸 수 있는 시대인가 보다.



/계속 (聾)

그때 이미 한 해의 목사고시 합격자가 8백 명이 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