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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칼럼]

[한마음 칼럼] "그 외제차를 위한 변명"

by 농자천하/ 2019. 7. 13.

 

그 외제차를 위한 변명

그때 그것이 번쩍거리는 외제 차가 아니었다면. 그때 그가 서울에서도 가장 부유한 강남의 아파트 단지에 교회를 개척하여 소위 엄청난 성공신화를 이룬 금수저 목사가 아니었다면.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이런 가정을 해 보는 것이다.

한 주에 하루, 우리가 다니던 신학대학 캠퍼스를 그가 찾는 날이면 아침부터 유명 연예인이라도 방문하는 날인 듯 학생들은 너나없이 은근히 들떠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그의 설교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그 날의 예배는 신학과 학생들은 물론 교회 음악학과나 사회복지학과 학생들까지 한 사람도 빠지거나 지각하는 이가 없었다.

몇 과목의 강의와 함께 설교를 마치고 그는 건물을 걸어 나가 운동장 한쪽에 주차해 둔 진한 감색 외제 승용차의 시동을 걸고 유유히 캠퍼스를 빠져나가곤 했다. 그는 알지 못했겠지만 바로 그 시간이면 학교 건물의 휴게실이나 강의실에 있던 거의 모든 학생이 창문가에서 그 모습을 내다보고 있었다. 작고 아담했던 캠퍼스에는 잠깐의 알 수 없는 정적이 흘렀고, 산등성이 아래로 내려가는 진입로를 돌아 그의 외제 차가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면 비로소 학생들은 꿈에서 깨듯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바로 그런 일이 신학대학에서 매주 한 번씩 반복되고 있을 때, 그래도 나름의 소명을 자각하고 신학교에 다니고 있던 어린 신학생들의 영혼에는 그처럼 번쩍거리는 최고급 외제 차가, 흰 와이셔츠에 금빛 커프스까지 착용한 고가의 양복이, 파이프 하나에 1억 원이 넘는다고 그가 자부심 부풀어 자랑했던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이, 서울 강남이라는 비싼 아파트 단지에 화려한 대형 교회당을 짓고 그곳에서 왕처럼 지내는 그의 위상이, 최고급 일류 레스토랑 같은 그의 유려한 설교 언어들과 목소리가 깊이 새겨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언젠가 자신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비전이라는 말로 포장된 허영, 헛된 망상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농촌교회 목회를 하느라 휴학 중이던 나는 복학하여 그로부터 ‘영성신학’과 ‘설교학’ ‘설교실습’이라는 과목을 수학했었다. 당시 나의 수업시간 필기는 꽤나 유명해서 시험을 앞둔 때면 급우들이 내 노트를 복사해서 돌려보곤 했다. 다시 꺼내서 읽어본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영성신학은 한 마디로 이것이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넉넉하게 넘치는 재화’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흔들림 없이 누리며 살 수 있는 능력!?”

지금에 와서 나는 이런 서글픈 가정을 해 본다. 만약 학생들이 숨을 멈추고 동경하던 그 대상이 그런 그가 아니었다면. 매주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내려 허름한 양복을 벗어 팔에 걸치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산 위의 학교로 걸어 올라와 투박하고 볕에 그은 얼굴로 진솔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목사였다면. 그나마 낡은 승합차를 매연 뿜으며 겨우 시동을 걸어 먼 어느 시골의 농촌으로 돌아가는 그런 목사였다면. 하여튼 그는 아무 잘못이 없다.



/계속 (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