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박(封駁)과 간쟁(諫諍)] 2014.02.04
002 / 충남노회 4만 성도 전도 대행진?
지난 2013년 가을, 충남노회 노회장에 선출된 이ㅈ팔 목사와 임원회는 ‘충남노회 4만 성도 달성을 위한 전 노회적인 전도대회’를 기획하고, 충남노회에 소속된 모든 부서, 위원회, 시찰회, 남여전도회 연합회, 교역자회, 청년 중고등부 연합회 등에 대하여 총동원령을 발표하였다.
‘2014년 충남노회 전도 대행진 발대식’을 개최하면서 이ㅈ팔 목사는 충남노회 현재 교인 수인 31,058명을 늘려 4만 성도가 되도록 하자고 강조하면서, 교회 부흥을 위해 노회장 자신이 먼저 5명을 전도함으로 노회를 섬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충남노회 4만 성도 운동본부’는 2008년 11월 이후, 제93회 총회장 김삼환 목사가 시작하였던 “예장 300만 성도 운동”이 전시적 일과성 총동원 운동에 그치고 말았다는 자성의 소리를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08년 총회장에 취임한 김삼환 목사는 93회기 총회 정책협의회를 통해 ‘예장 300만 성도 운동’을 밀어붙였다. ‘예장 300만 성도 운동 발대식’과 ‘전진대회’를 개최하면서 다음 회기까지 이어지는 총회 중점사업으로 채택하였다. 당시 2백 68만 6천 812명이던 우리 교단의 교인 수를 전격적으로 늘려 마침내 3백만 명의 교인 수를 달성시키자는 것이었다. ‘전도’하자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겠지만, 성장 아닌 성숙이 교회의 과제로 대두되는 때에 의아스러운 일이었다.
역시 대표적인 대형주의(대형교회를 최고의 목표로 욕망하는 가치관) 교회를 일군 장본인답게 모든 기획과 실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교단 전체를 명성교회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왔으나 누구도 대놓고 이의제기하지 못했다. 전 교단적으로 실시했던 ‘예장 3백만 성도 운동’은 그만한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이 가능한 대도시 대형교회 자신들을 위한 목표였을 뿐, 절대다수의 농어촌 도시의 작은 교회들의 상황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운동이었다.
김삼환 목사는 총회장 담화문에서, “3백만 성도 운동은 만연한 교회 안팎의 문제와 어려움을 치유하는 운동”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분쟁과 갈등, 소송과 정죄의 사슬로부터 벗어나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무리된 지 4년이 되었으나 그런 목표가 어떻게 달성되었는지 어떤 과제들이 드러났는지에 대한 진단도 연구도 없이 ‘300만 명 달성에 감사한다’며 총회장과 임원진이 모여 앉아 찍은 사진만 한 장 게시되어 있을 뿐이다.
오늘날처럼 기독교의 위상과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는 때에 산하 교회들을 총동원시키는 식의 구시대 전도 운동이 과연 교단과 지교회들의 발전에 무슨 도움이 얼마나 되었는지 자문해 보자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충남노회에서 실시하려는 전도 운동 또한 '4만 성도, 전도 대행진'이라는 거창한 구호만 있을 뿐, 목회적 선교적 차원의 구체적인 당위 과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들을 수 없다. 그나마 교인 동원 효과를 볼 수 있는 교회들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오히려 농어촌 작은 교회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충남노회의 현실에 맞도록 노회 내의 작은 교회들이 자신의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복음의 빛을 비추며 지속 가능한 역사를 일구어낼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자는 게 훨씬 시의적절하다. 어떤 모양으로든 전도하지 않는 교회가 없다. 지교회들의 그런 안타까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일어나지 않는 원인을 현장 속에서 찾아내고 지교회 차원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지원하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심지어 매우 고무적인 <정책 총회 - 사업 노회>에서도 정작 ‘지교회들’은 아예 고려되지 않고 있다. 교단을 구성하고 있는 게 총회와 노회뿐이란 말인가? 지교회들은 총회와 노회를 위한 하부 구조일 뿐이라는 것인가? 그나마 ‘예장 300만 성도 운동’이라는 사업을 총회가 대대적으로 직접 주관한 일로 인해 ‘정책 총회 – 사업 노회’는 아예 무너져버렸다. 총회나 노회는 지교회의 ‘상위기관’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교회들을 ‘동원’시키겠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오히려 지교회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맡은바 복음 선교를 자신들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능동적으로 감당하도록 면밀히 돕는 총회와 노회여야 한다. 사도행전 초대교회처럼 지역사회의 칭송을 받아 부흥하게 하는 운동이 더 절실하다는 시대적 요청도 좀 기억하기 바란다.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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