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칼럼 : “마을 목회자의 기질?”
그러므로 ‘마을목회’는 이웃 사랑의 가장 실제적인 실천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미전도종족 해외 선교사들을 보라. 바로 그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현세적 성육신’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아닌가. 어디 ‘마을목회’ 뿐이랴. 그건 세상 모든 ‘비영리 사회적 단체’들의 기본정신이요 자세인데, 하물며 교회는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하지만 오히려 그런 교회나 노회 총회 안에서 목소리 큰 목사 장로나 권사 중에는 유독 그렇지 않은 자들이 많다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런 일에 실망이 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나 아직 세상 쓴맛 아니 ‘교회 쓴맛’을 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특히 이런 일에 좌절하는 목회자나 신학생들은 다음 성구를 죽기 살기로 붙잡고 살아야 한다. (시 37편)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나아가 자신의 이타적인 선한 기질이 도리어 그런 자들에게 온상이 되어주는 일은 없도록 주의해야 할 책임도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타고난 자들이 명이 길게 목회하며 대개 건강히 산다. 신학생 시절, ‘21세기 목회 리더십’이 유행했다. 진정한 목회 리더십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구성원을 섬기는 자세로 그들의 성장 및 발전을 돕고 조직 목표 달성에 구성원 스스로 이바지하게 만드는 지도력’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나의 온갖 현장들에서 절실하게 그 반대의 일들을 겪으며 회의하고 있었다. 그런 리더십을 가진 분들은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으셨고, 안타깝지만 그런 분들일수록 일찍 돌아가시는 것을 자주 보아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목사님들은 사실 자신의 역량이 다 소진되어 그런 게 아니었다. 그분들의 솔선수범과 진실하고 안타까운 설교를 끝끝내 귓등으로 듣고 변화 성장하지 않는 장로 권사들의 무반응이나, 끝끝내 남의 일로 여기면서 일반 세상에서나 볼 법한 상식들로 교회를 운영하려는 그들에 대한 실망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이 이유였다. 오죽했으면 교회 성장학이라는 것이 ‘자신을 위해 성서를 읽지 말라. 설교가 진실하면 심각해져서 교인이 모이지 않는다’고 한 게 정직했던 거다. 서번트 리더십? 개나 줘 버려!
그러므로 이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누가 요구하는 게 아닌데도 속절없이 ‘마을목회’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마을을 목회로 섬겨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목회자라면, 적어도 그는 이타적이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것. 이렇지 않으면 ‘마을목회’는 생각지도 마라. 그건 결코 너희가 욕망하는 대로 대형교회를 만드는 것과는 정반대로 가는 예수님의 길이니.
물론 아주 조심할 건 하나 더 있다. 남의 손으로만 뭐든 하려 하고 그걸 자신의 치적으로 팔아먹는 입만 살아 있는 마을목회자들. /계속 (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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