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말이지 이렇게 별일 아무 일 없이 그냥 38년 목회 조기 은퇴 전역자 자연인이 되는 마지막 주일일 줄 알았다
밤 10시 반이 다 된 시간, 1시간 50분을 달려 세종시의 한 작은 시골 면소재지에 마련한 작고 좁은 거처에 도착했다
이제 어서 모자란 잠을 청하고 요즘 매일 그러했듯 내일 새벽 4시 알람 소리에 후닥닥 일어나 출근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뿔사! 통근버스 키를 태안에 두고 온 게 아닌가
덤블도어가 아닌 이상 120Km나 떨어져 있는 곳 비좁은 단칸방 탁자에서 자동차 키를 가져오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이게 바로 우리 머글들 세상의 변할 리 없는 숨이 멎을 정도로 명쾌 단순 명백한 이치이다 그냥 다시 돌아가서 가져오는 거
비오는 밤길을 되짚어 달려 거의 다다랐다 예의 그 통근버스 키는 탁자 겸 책상 겸 식탁 위에 놀라울만큼 고대로 있었다
그냥 여기에서 한두 시간 잠깐 쪽잠 자고 바로 세종시로 출근하는 수 밖에 본래 우리 머글들은 포트키 같은 건 쓰지 않는다
상상만으로도 앗찔한 일이었다
만일에 정말로 만약에 버스 키가 이 지구 위 어딘가에 저 혼자 오롯이 놓여 있다는 걸 만약 새벽 출근 직전에 알았더라면?
그러고 보니 역시 이건 이미 충분히 예정된 일이었다
지난 21년을 꽉 채운 나날 동안 그토록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하고 아예 정말 하나 하나씩 가르치고 촉구했지만 그래도 한해 수천만 원씩은 되는 교회재정 관리는 엉망진창으로 조,금,도, 교정되지 않았다
수기 장부와 통장이 단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이 매월 제직회에 보고 되는 걸 알고는 놀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아마 왜 이리 호들갑? 목사가 교회 재정을 손에 움켜쥐려나? 분명 이랬던 거다 아이고
에이 설마 그럴 리가 또는 그리 반복해서 말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라고 하겠지 당연히 하지만 이건 지난 만 21년 동안 거의 매 주일 매 달 격은 사실 그대로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건 그쪽이었고 유치원 아이들 가르치듯 해도 무반응인 상황에 늘 민망한 건 이쪽이었다 결국 그나마 할 수 있는 방안은 한 가지뿐 매 연말 결산 때마다 날밤을 새웠다
당시 윈도우Xp에서 구동 되고 고맙게도 농촌교회에 무료로 제공되는 교회 교적-재정관리 프로그램을 찾아내 설치하고 그나마 수기로 작성은 하는 회계장부를 모두 입력하는 수 밖에 그래도 그 본인 명의로 된 교회 통장은 볼 수 없었다
그냥 남아있는 영수증이나 청구서들로 찾아낸 기억과 합리적인 추정으로 숱하게 빠져 기록되지 않은 각종 공과금 지출들은 물론 아이고 다시는 생각도 하기 싫은 그런 일이 무려 20년 넘게 반복 됐다
지난 연초에 전격 은퇴를 선언하고 당연히 그 엄청난 교회 재정관리도 최종 정리를 시작했다 쉽게 관리하도록 체계를 만들고 가르친대로는 눈꼽만큼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없어지지 않고 남은 지난 10년 치 교회 통장들은 그때 교회 명의로 전격 전환시켰기에 가능했던 거다
길고 길었던 지난 여름 코로나19까지 겹치고 후유증이 엄청났었다 후임자 청빙 과정과 마무리까지 해달라는 요청에 은퇴를 미루고 특히 그 재정관리를 최종적으로 다시 시작했는데 이게 완전 지옥의 문턱이었다
하긴 또 누군가는 그러겠다 그걸 뭘 손대냐고 사서 웬 고생이냐고 에효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이 전무한데 교회가 세워진다고? 목회자의 이런 당연한 지도에 조차 끝내 저항하고 멋대로 강퍅한 데 교회가 세워진다고? 아이고
하여튼 버리지 않고 모아놓은 영수증들 그리고 수기 장부를 새 담당자가 거의 사수하듯 끌어앉고 꼼꼼히 기록해 둔 매 주일 헌금 수입 기록 또 보관해 둔 교회 명의 통장들을 모두 꺼내 수입과 지출을 하나 하나씩 다시 맞춰나갔다 심한 난시가 더 극심해져 매번 눈물이 줄줄 나왔다
이렇게 지나노여름 몇 달을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며 또 대형 화물차 운행을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나가며 그렇게 보냈다 그렇게 반복하여 어지간히 검토 검산했으니 정리가 다 됐는 줄 알았다
어제는 정말이지 12살 때부터 이 한 길만을 살아온 딱 50년 동안의 그 지난했던 치열한 나날들이 그냥 한 평범한 주일로 마무리 되는 줄 알았다 아니 매주 금요일 밤 막히는 고속도로 덕에 늦게 퇴근하여 그리 되기를 바라면서
목사로서 마지막 주일을 지내려 지난 금요일 밤 태안에 미리 도착한 게 밤 11시였고 그대로 쓰러져 정말이지 간만에 곤히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토요일 오후 2시였다 도저히 깨울 수 없어 그냥 두었다는 아내의 관용을 내심 원망하며 대충 저녁 한 끼를 먹고 미리 주보라도 만들어 놓아야 하니 교회당으로
50년 동안의 사명감 또 외길 목회 38년을 마무리하는 그 시점에 내가 그래도 또 다시 열어 본 게 뭐였겠는가 무심코 교회 재정부 노트북을 켜고 혹시나 싶어 2015년 파일을 열었는데 이게 웬일
그때가 교회당 이전 직후이고 그 망할 교인님들 난리춤 추다가 자진 이탈한 덕에 특히 재정이 긴박했던 때였고 하는 수 없이 마이너스통장을 누구의 도움으로 만들어 한달 한달 넘기고 있었는데 이 통장 빚을 그냥 교회 재정에 잔액이 조금 생기는대로 그때 그때 넣고 또 모자라면 얼마씩 빼서 쓴 걸 또 그냥 생각 나면 적고 태반은 잊어버린채 둔 것이었고 내 나름 그리도 치밀하게 정리한다면서 이걸 다 찾아 입력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게 아닌가 에효
어차피 통장에는 그대로 다 찍혀있으니 이걸 일일이 다시 확인하며 입력하다가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겼고 마지막 주일 예배에 새 담임목사 청빙 당회와 제직회도 해야 하는 주일이니 일단 서둘러 태안에 오니 새벽 2시
아이고 그렇게 날이 밝아 역사적인 마지막 주일! 예배를 인도하고 청빙 절차 잘 마무리 됐지만 이 미진한 문제는 그대로 남았으니 내가 마무리할 수 밖에 평일엔 불가능하니 앞으로 주말마다 작업하여 마무리 짓기로 하고 목양실 짐을 꺼내고 남은 거 분리수거할 새 없어 일단 지하에 다 내려놓고 태안에 겨우 도착하니 저녁 6시반
한 주 5일 동안 차 운행 중 틈틈이 먹어야 하는 점심 저녁 모두 열 끼 도시락을 싸느라 아내는 다시 풀가동을 시작했고 나는 곁에서 기다리며 잔심부름이나 할 수밖에 그렇게 싸주는 가방을 들고 서둘러 출발?!?!
통근버스 키는 고스란히 얌전히 탁자 위에서 그 누구의 주시도 받지 못한채 저 혼자 놓인 고대로 아이고
그렇게 이 역자적인 날 하룻밤 새에 태안과 세종시 어느 면소재지 사이 120Km를 하룻밤에 세 번 내참 요란하게도 산다
역사적인 목회자로서의 마지막 주일 그리고 오늘 한 자연인으로서의 역사적인 첫째 날은 이렇게 또 후덜덜이었다
지난 여름 정말 두 번이나 천당 무노앞까지 갔다 온 것도 이번 일도 결국은 선택과집중의 문제 제에발 이제는 좀 그만!
딱 여기까지만! 지난 21년 동안 우리는 어마어마한 일들을 연일 해내면서 그래도 교회는 늘 그냥 그저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게 도리어 무서웁던 그런 날들을 참 치열하게도 살아왔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좀 너무나 평범해서 지루한 날들을 좀 나도 살아보게 되기를 그냥 나도 좀 아무 생각 없이 어디 작은 교회 찾아가 이제는 좀 회중석에 앉아서 기독교를 완전 전혀 알지 못하는 초신자가 되어 예배를 좀 드려 보기
그리고 남은 교회도 좀 이제는 다른 평범한 교회들 만큼'만' 쫌 되어 보기 어이구 제에발 좀
오늘 하루 틈틈히 이 역사적인 일을 써 둔다 겨우 1시간 정도 잠을 잤지만 정신을 더 빳짝 차리고 아이고 느무느무 어렵다 휴대폰으로 글 쓰는 거 아까부터 일 나갈 시간 돼 간다고 알람소리가 요란하다
근데 하여튼 난 지금 완전 자연인이닷 얏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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